안녕하세요
사부작 사부작
자유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 입니다 .^^
로마 카톡길 교회의 첫 라틴 아메리카 지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전 교회를 믿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 중요하신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니
맘이 아프네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인은
뇌졸중과 심부전으로 바디칸에서 공식 성명하였습니다.
안타깝네요 ㅜㅜ
교황은 가톡릭 교회를 이끌며 성베드로 후계자로 여겨져 14억 신도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가톡릭 신자들은 이러한 권위가 교황을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 연결시켜 영적 인도의 핵심 원천으로 여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널리 알려진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는 현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중 한 명입니다.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2013년 3월 13일부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자 바티칸 시국의 군주로 재임해 왔습니다. 그의 교황 재임 기간은 겸손, 사회 정의, 환경 관리, 그리고 종교 간 대화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아메리카 출신 교황, 그리고 1,200여 년 만에 탄생한 최초의 비유럽권 출신 교황으로서, 베르골리오는 가톨릭 교회의 역사와 세계화 방향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유년 시절 및 학력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는 이탈리아 이민자 마리오 호세 베르골리오와 레지나 마리아 시보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철도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주부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다섯 자녀를 두었고, 호르헤는 장남이었습니다. 깊은 종교심과 풍부한 문화 속에서 자란 베르골리오는 어린 시절부터 강한 신앙심과 봉사 정신을 키웠습니다.
그는 기술학교에 진학하여 화학 기술자로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21세에 사제직에 대한 부르심을 느껴 1958년 예수회(예수회)에 입회했습니다. 그의 예수회 교육에는 광범위한 학문적, 영적 수련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인문학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철학을, 그리고 산미겔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1969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예수회에서의 경력과 교회 내에서의 성장
베르골리오는 서품 후 예수회 내에서 교사, 영적 지도자, 산미겔 예수회 신학교 학장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습니다. 그의 지도력과 깊은 지적·영적 성장은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으로 임명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소위 "더티 워(Dirty War)"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혼란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는데, 당시 군사 독재 정권은 광범위한 인권 유린을 자행했습니다. 이 시기 베르골리오의 역할은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는 박해받는 사람들을 은밀하게 도운 공로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1992년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었고, 1998년 안토니오 콰라시노 추기경의 선종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대주교로서 그는 주교궁 대신 소박한 아파트에 거주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겸손함으로 유명했습니다. 또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옹호 활동과 아르헨티나 사회의 사회적·경제적 분열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추기경단에 임명했습니다. 그의 명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베르골리오는 여전히 신중한 인물로, 종종 사목적 돌봄에 집중하고 세간의 이목을 피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의 업적은 교회 내에서 존경을 받았고, 그의 미래 리더십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교황 선출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거의 600년 만에 처음으로 사임하자, 추기경단은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를 소집했습니다. 2013년 3월 13일, 베르골리오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가난, 평화, 그리고 창조물 보호에 헌신한 것으로 알려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기리기 위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이름은 그가 교황직에 어떤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신호였습니다.
교황 재임 기간의 주요 주제와 계획
겸손과 단순함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기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겸손과 단순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는 재임 초기부터 여러 전통적인 관습을 깨뜨렸습니다. 사도궁 대신 게스트하우스인 도무스 산타에 마르타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예복을 입고 교황의 권력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은폐를 피했습니다.
사회 정의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돌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그는 궁핍한 이들을 섬기는 교회의 사명을 자주 강조하며, 신자들과 세계 지도자들에게 빈곤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도록 촉구합니다. 그의 사도적 권고인 에반젤리 가우디움(복음의 기쁨)은 사회 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더욱 선교적이고 포용적인 교회를 촉구합니다.
환경 관리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라는 시급한 문제를 다룬 획기적인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발표했습니다. 이 회칙은 전 세계적인 생태적 회심을 촉구하고 인간과 자연 세계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환경적 책임에 대한 포괄적이고 도덕적인 접근 방식으로 종교계와 과학계에서 찬사를 받았습니다.
교회 개혁과 통치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내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교회의 중앙 행정 기구인 로마 교황청을 재편하고 오랜 재정 부실 운영을 바로잡았습니다. 또한 미성년자 보호 위원회를 설립하고 교회 내 성적 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규약을 시행했습니다.
종교 간 대화와 세계 외교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 간 대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는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고 다른 종교 전통들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특히 2019년에는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엘타예브와 종교 간 평화와 공존을 증진하는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그의 외교적 노력은 분쟁 지역의 평화 증진과 세계적 불평등 해소에도 확대되었습니다.
교회 교리의 현대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핵심 교회 교리를 유지하면서도 논쟁적인 문제들에 대해 더욱 사목적 접근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판단보다 자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혼, 동성애, 교회 내 여성의 역할과 같은 주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교회 내 다양한 목소리의 대화와 의견을 장려하는 그의 시노드적 접근 방식은 그의 리더십의 특징이었습니다.
개인적 특징과 대중적 이미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따뜻함, 친근함, 그리고 진정성으로 널리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는 장애인들을 포용하거나 수감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등 자발적인 연민의 행동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강론과 공식 연설에는 종종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조언과 개인적, 공동체적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 인터뷰, 그리고 즉흥적인 발언을 자주 활용하는 그의 소통 방식은 교황직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접근성과 공감대를 형성해 왔습니다. 그는 트위터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세계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도전과 비판
인기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기간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의 개혁 노력은 바티칸 관료 조직 내부의 저항에 직면해 왔습니다. 교회 내 일부 보수 세력은 교리 문제에 대한 그의 열린 태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로 보는 반면, 진보 집단은 그가 충분히 진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성 학대 위기에 대한 그의 대응은 새로운 계획과 사과로 점철되었지만, 주교들의 책임 추궁 과정에서 일관성이 없고 지연되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또한 기후 변화, 이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그의 강경한 입장은 일부 정치 및 재계 지도자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유산과 영향
프란치스코 교황은 임기 후반에도 교황직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의 유산은 여전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회와 세상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는 것은 이미 분명합니다. 그는 21세기에 교황의 역할을 재정립하여 봉사, 연민, 그리고 현대 사회와의 소통을 강조했습니다. 소외 계층에 대한 그의 관심, 환경 보호 촉구, 그리고 교회를 더욱 포용적으로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가톨릭 지도부에 대한 전 세계적 인식을 변화시켰습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교황은 말과 행동을 통해 겸손, 자비, 그리고 연대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의 교황직은 신자들과 더 넓은 사회 모두에게 영적 지도력이 우리 시대의 심각한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재고하도록 촉구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니 참고만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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